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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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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 자족? 만족?』
운영자 2025.7.12 조회 50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도록 우리를 부추깁니다. 더 좋은 직업, 더 큰 집, 더 비싼 자동차, 더 많은 돈우리는 마치 쳇바퀴 속 다람쥐처럼 다음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갑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끊임없는 추구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줄까요? 부족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지만 결국은 또 다른 부족을 발견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역설적으로, 진정한 풍요는 소유하는 것의 양이 아니라, 현재 가진 것에 대한 자족(自足)과 만족(滿足)에서 비롯됩니다.

 

  자족은 스스로 넉넉함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외부적인 조건에 덜 의존하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여 평안을 찾는 태도입니다. 만족은 현재 상황이나 가진 것에 대해 충분하다고 느끼는 감정입니다. 이 두 가지 개념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외부에서 찾아 헤맵니다. 최신 유행하는 물건을 사거나, 사회적인 인정을 받으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적인 요인에서 오는 행복은 일시적이며, 금방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마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잠시의 시원함은 있지만 결국 더 큰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외부적인 충족은 끊임없는 욕망의 악순환을 만들어냅니다.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전서 6:10) 이 말씀처럼, 소유에 대한 과도한 욕심은 오히려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줄 뿐입니다.

 

  반면, 자족과 만족은 내면의 상태에서 우러나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현재의 삶에 감사하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연습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는 길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굶주림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립보서 4:11-12) 이는 외부 환경에 관계없이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자족의 참된 의미를 보여줍니다.

 

  자족과 만족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비교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며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보이는 화려한 삶들은 종종 우리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자족하는 사람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각자의 삶은 고유하며, 다른 사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로새서 3:5) 남을 부러워하고 탐하는 마음은 결국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다는 경고는 우리에게 비교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줍니다.

 

  물론 자족과 만족이 무조건적인 현상 유지나 발전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건강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것은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목표가 욕망의 노예가 아닌, 성장을 위한 건강한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삶은 마치 정원과 같습니다. 끊임없이 외부에서 새로운 꽃을 사다 심는 대신, 이미 내면에 피어 있는 꽃들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넉넉함을 느끼고,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는 태도는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선물할 것입니다. 물질적 풍요가 아닌 내면의 풍요를 추구하는 삶, 그것이 바로 자족과 만족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큰 교훈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크리스천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로 충분합니다. 그분으로 나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나의 참 만족입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합니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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